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림 칸국 (문단 편집) === 오스만 제국과 인연 ===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 [[모스크바 대공국]],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위험한 독립을 유지하던 크림 칸국은 1466년 하즈 게라이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들이 [[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었다. 그중 장남인 누르 데블레트(Nur Devlet, نور دولت)가 킵차크 칸국의 지원을 얻어 칸의 자리에 오르자 대다수 귀족들의 지지를 얻고 있던 하즈 게라이의 육남 멩리 게라이(Meñli Geray, ۱منكلى كراى)가 반란을 일으켜 잠시 칸의 자리에 올랐으나 곧바로 형한테 패해 크림 반도 남쪽의 제노바 식민지였던 [[페오도시아|카파]]로 쫓겨났다. 그리고 쫓겨난 멩리는 카파의 [[제노바 공화국|제노바]]인들과 손을 잡은 후 1469년 다시 수도로 진격해 형을 [[제노바]]의 감옥에 가둔 후 다시 칸의 자리에 올랐다. 멩리 게라이는 당시 세력을 급속도로 확장하던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제노바와 [[테오도로 공국]]과 손을 잡았는데 이것이 [[메흐메트 2세]]의 심기를 건드렸고 1475년 대규모의 오스만 함대가 대대적으로 크림 반도를 침공해 테오도로 공국을 멸망시키고 카파를 정복했다. 당시 멩리 게라이는 귀족들의 반란으로 칸 자리를 다른 형인 하이데르(Hayder, حيدر)에게 막 빼앗긴 참이었는데 칸 자리를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한 동맹인 제노바가 위협받는 걸 보고 오스만과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깨지고 오스만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오스만 제국]]은 내친 김에 크림 칸국까지 공격해 하이데르를 몰아내고 누르 데블레트를 칸 자리에 앉혀 크림 칸국을 속국으로 삼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477년 킵차크의 칸 아흐메드 칸의 사촌 야니베그가 침공해 크림 칸국은 일시적으로 킵차크 칸국의 지배 하에 들게 된다. 한편 [[코스탄티니예]]로 끌려간 멩리는 칸 자리를 되찾게만 해준다면 오스만에 복속하여 앞으로 영원히 [[파디샤]]의 봉신으로 살 것을 맹세했고 때마침 킵차크에 멸망한 크림 칸국의 귀족들이 오스만에게 킵차크를 몰아내고 멩리를 복위시켜달라고 요청하면서 1478년 멩리는 포로 신세에서 풀려나 오스만군와 함께 크림 반도에 돌아왔고, 멩리가 오스만군의 도움으로 킵차크군과 누르 데블레트를 같이 몰아내고 [[칸]] 자리를 되찾으면서 크림 칸국은 [[오스만 제국]]의 속국인 번국이 되었다. 보통 속국으로 전락하면 위신이 약해지기 마련이나 멩리의 경우는 반대로 권위가 강화되는 효과를 얻었는데, 크림 칸국의 타타르족들이 강력한 오스만제국의의 지원을 받게 됨으로써 북쪽의 [[러시아인]]과 서쪽의 [[폴란드인]] 및 [[합스부르크 제국]]의 [[독일인]]([[오스트리아인]])들이 그들을 상대할 때 더욱 조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크림 칸국은 다른 타타르 국가들인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이 1552년과 1556년, 각각 [[루스 차르국]]에게 멸망당할 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왈라키아, 몰다비아 등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들이 으레 그러했듯 오스만 제국이 전쟁을 벌일 때 군대를 보내주어야 했고, 크림 칸국이 보낸 타타르 기병대는 오스만 제국이 전쟁을 벌일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다. 특이한 부분은 연공을 면제받는 대신 다른 신하국들보다 군사를 더 보낼 의무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만큼 크림의 기병대가 오스만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봉신국으로 복속된 크림 칸국에 대한 오스만의 대우는 상당히 좋았던 편으로, 고유의 문장을 사용할 권리는 물론이고 독자적인 법령 제정권에 동전 주조권까지 있어 거의 독립이나 다름없는 자치를 누렸고, 의전상으로도 칸은 제국의 재상보다도 높아 술탄 바로 다음의 2인자 취급을 받았다. 훗날 칸의 반란으로 위치가 강등되었다는 게 재상과 동급으로 간주되었을 정도. 이는 오스만 제국의 신하국들 가운데 이슬람 국가가 [[크림 칸국]] 뿐이었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오늘날 [[루마니아]] 및 [[몰도바]]에 해당하는 [[왈라키아 공국]]이나 [[몰다비아 공국]], [[헝가리 왕국]]의 후신 격이었던 [[트란실바니아 공국]] 등은 모두 기독교 국가였기에 크림 칸국을 우대해 준 것이다. 이 외에 바르바리 해적들도 있기는 했지만, 이쪽은 '신하'는 틀림없었지만 '신하국'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조직을 이루지는 못했다. 크림 칸국의 위상이 오스만 제국 내에서 얼마나 높았는지 도널드 쿼터트의 <오스만 제국사>와 Simon Montefiore 의 Prince of Princes: The Life of Potemkin. London, 2000 에 따르면 오스만의 왕통이 단절될 경우 제국의 술탄위를 게라이의 가문이 이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니까 오스만 왕통이 단절되었다면 [[보르지긴]] 씨족 출신 술탄이 나오는 것도 가능했단 얘기다. 물론 실제로는 그럴 일이 없었지만, 그만큼 크림 칸국의 위상이 높았다고 보면 되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